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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도착한 곳. 캐나다.
자녀 교육

3살 아이와 40넘은 아빠

by 캐나다 여행자 2023. 12. 2.

아빠 집에 가기 싫어 

아빠 왜 사과 안 가져 왔어 

아빠 내 유모차가 비에 젖었잖아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려오는 길이 너무 두려웠다.
그래. 그럴줄 알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러는구나. 

오늘은 나도 더 이상 못 받아주겠어. 

그래, 네 마음대로 해 

 

나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정말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유모차를 돌려 아이와 반대방향으로 돌아가자 아이는 매번 그랬듯 울음을 터트렸다. 
울던지 말던지. 오늘은 나도 안 되겠다. 너무 힘들어. 
그렇게 비를 맞으며 유모차를 밀고 집에 도착했다. 
하필 이런 날에 비가 오냐.. 우산이라도 좀 가져올걸. 
머리가 너무 아프고 아이를 보면 화를 낼 것만 같아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다고 했다. 
아내 표정이 밝지 않다. 내가 걱정되는지 별도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로비로 내려가서 잠깐 앉아있었다. 
마음이 진정될때까지. 머리가 좀 식을때까지. 

내 얼굴을 보고 어두워진 와이프의 얼굴이 자꾸 눈에 밟힌다. 
아빠 어디가냐고 물었던 아이의 얼굴도. 

내가 이러면 안되지.... 

오늘은 좀 일찍 재워야겠다 싶어서 집에 다시 들어와 아이를 씻겼는데, 이 녀석 눈치를 힐끔힐끔 본다. 

 

아빠 미안해

미안하다고 하지마
앞으로 그런 행동 안 하면 돼

 

퉁명스럽게 서로 같은 말을 반복하고 말없이 아이를 씻기고 나와, 아이 머리 말려주고 잠자리에 드려는데 쪼그만 녀석이 눈치를 이래저래 보는게 안스럽다. 

아내가 잠시 친구와 통화하는 사이, 아이를 방으로 조용히 데리고 갔다. 

그리고 꼬옥 안아주면서 얘기했다. 

우리 화해 하자

 
아이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화해가 무슨 말인지 갸우뚱한다. 
우리 서로 마음 아프게 하지 말자. 아빠도 너한테 잘할게. 너도 아빠한테 잘해줄 수 있니? 

아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빠 앞으로 말 잘 들을게.
유치원도 잘 가고, 땡깡 안 부릴게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았던 내 자신을 칭찬하면서도, 고작 3살 먹은 아이에게 내가 삐져있었다는 것이 내내 찝찝했었는데 
아이에게 불편한 감정을 갖고 다음 날까지 불편하게 대하고 싶지 않았고 
화해라는 것으로 서로를 존중하기로 약속하는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같은 일이 조만간 또 반복되겠지만 말이다. 

만약에 그렇더라도 아빠는 너와 잘 지내고 싶고 그렇게 하려면 너도 매너를 지켜야해라고 말해줘야겠지 라고 다짐한다. 

절대 화내지 말고.
연습 또 연습.. 화내지 않기.  

아이가 내가 해줬던 말을 기억할까... 
 

오늘은 유치원 잘 가더라고? 별 일 없이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아내에게 물으니 
어제 일 때문인지 아이가 아침등원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내 말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아빠가 어렸을때는 말이야

 

시간을 거슬러 내려가본다. 

40이 넘어서야 제대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인데, 
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늘 내 마음을 숨기고 살거나, 감정이 어려질때는 그저 참으려고만 했었으니까 라고 기억을 해본다. 
 
어렸을 적 기억에, 우리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집의 가정불화를 숨기고 싶어했다. 
아빠가 술에 취하셔서 난동을 부리던 밤이면, 매맞던 엄마와 누나랑 울면서 밤을 꼴딱 새우고, 다락방에서 혹은 옆 집에서 새우잠을 숨어서 자도 자고 있는 우리들을 깨워 도시락을 챙겨 학교에 늦지 않게 보내셨다.
그렇게 학교에 가서도 나는 간밤에 있었던 일들을 아무에게 이야기 할 수가 없었다. 

담임 선생님에게 말씀을 드려볼까.
아니야, 창피하니까 양호실 선생님께 말씀드려볼까.
아니야. 그 분 잘 알지도 못하는데.
차라리 학교 마치고 하교길에 경찰서에 들려서 경찰아저씨에게 오늘밤은 꼭 와주셔서 도와달라고 하소연해볼까. 

이런 생각들을 얼마나 많이 했었는지.. 
 
그 때 내 주변의 어른 누군가가 내 말을 이해해주고 들어줬다면 어땠을까. 

살면서 그런 생각을 정말 많이 해봤다. 그 때 누군가가 나를 도와줬었다면. 
 
나를 낳아주신 내 부모님은 나를 분명히
사랑으로 키워주려고 노력하셨겠지만
지난 날의 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갖고 살고 있다. 

우리 부모님은 한번도 나에게 지난 날에 대해 사과를 한 적이 없으셨다. 

가해자로 보였던 아빠도, 피해자로 보였던 엄마도. 두 분 다 그저 내가 더 자라면 그들을 이해하겠지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아이를 보고 어느 때보다도 더 크게 안아주고 칭찬해줬다. 

항상 나를 보면 웃어주고 나에게 힘차게 달려와서 하루종일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안기는 이 아이에게, 나는 어떤 아빠로 기억이 될까. 
 
이번 주말만큼은 아이에게 정말로 큰 칭찬과 리액션을 해주련다. 

아빠는 항상 네 옆에 있단다.... 뭐든지 말하렴 나는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어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더라도. 

연습 또 연습을 해서라도. 

화해기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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