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오늘, 오전 시프트로 출근한 나는 혼자 일하는 관계로 사무실에서 맘 편히 김치를 싸온 반찬 뚜껑을 열어 놓고 주변 눈치없이 김치도 먹고 환기도 시키고 최대한 편하게 식사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같은 부서 오후 시프트 아저씨들은 오후에 나오니까 정말 맘 놓고 김치냄새를 즐기며 점심을 먹었다. 오후 조 출근하시는 분들 오시기전에 냄새는 다 빼놔야하지만 그 쯤 노력이야 뭐 기꺼이 할 수 있었다.
직원용 휴게실이 있긴한데 코로나 이후 여러가지로 불편해져서 혼자 조용한 공간에서 식사하기를 선호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내게 준 작은 이득이랄까.
평소에는 말 많은 타부서 사람들, 매니저들의 대화 속에서 관심도 없는 얘기 들으며, 리액션하며 (나는 주로 듣는 편이다. 그게 말 하는 것 보다 편해서) 식사을 했고, 그러다보니 짧은 시간내에 식사를 하는게 익숙했었고 나도 모르게 밥을 거의 마시다시피해서 그 시간들이 점점 불편했었다.
유뷰트의 신사임당이라고 다들 아시지 않나.
평일과는 다르게 공용책상에 핸드폰을 올려놓고는 유튜브를 틀고 어느 직장인 아저씨의 월급으로 5억 모은 이야기 등등을 보며 밥을 먹었다. 말은 아저씨라고 했는데 나보다 좀 어려보이기도 하고 ㅋ 나도 아저씨라 불리는 사람이니 뭐. 직장인이 대단하시네 어디 한번 얘기를 들어볼까하며 식사하면서 유튜브를 시청했다.
신사임당님과 그 분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나이대도 나랑 비슷할테고 친구들끼리 모여서 얘기하는 기분이 들더라. 나랑 같이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고 자랐던 친구들은 다들 지금 뭐하며 지낼까...
난 정확히 십 년 전에 한국을 떠났다. 그러려고 한건 아닌데 그렇게 됐다.
한국에서 대학도 편입하고 나름대로 잘해보려고 했는데, 대학을 옮기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으니까.
공무원이 되보려고 시험준비하느랴 휴학도 해보고 취업에 실패한 이야기도 있고. 철저하게 실패해서 도무지 출구를 모르겠던 시절이 있었다. 취준생 시절을 버틸 수 있는 갖은 돈, 지식, 인맥, 스펙이 부족해서 그 당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데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그 결과는 내 몫이었다.
그 때즈음 와이프를 만나 여기 오기로 맘 먹고 아무것도 약속된게 없는 낯선 나라에 오게 되었다. 우리는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돈이 없고 외로울때 만나서 돈의 소중함을 알고 돈이 우리의 삶을 조금씩 변화를 시켜가는 과정을 같이 했고 지금까지도 해오고 있다.
내가 10년전 한국을 떠난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여행자금만 좀 벌면서 쉬고 싶어 캐나다까지 오게 되었다. 그렇게 좋은 기운을 갖고 다시 한국에 들어가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지만 크게 돌아가고 싶은 맘도 없었다. 내 결정으로 인해 가족들로부터 비난도 상처도 많이 주고 받았다.
흙수저도 안되어 맨 손으로 밥 퍼먹은 제로수저로 시작해 많은 시간이 흘러 늦었지만 지금은 아기 낳고 살고 있고 그럴 수 있음에 감사하다. 아직 한국에 못가고(?) 여기서 살고 있긴하다. 처음 목표처럼 추억(?)도 마니 쌓고 있고 ㅎ... 10년전과 크게 달라진 것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도 같이 갖고 살고 있다.
한국에서 다시 정착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 다시 정착할 수 있을까. 여기 생활도 이제 제법 익숙해졌지만 아무래도 나의 모든 것은 한국에서부터였으니 한국이 더 편하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오늘 점심 도시락 먹다가 블로그에서 옛날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네....
내가 신사임당 같은 경제적 자유를 얻어 내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캐나다버전 신사임당이라고 해야하나 하하...그런 인플로언서가 된다면이란 생각도 잠시나마 해봤다. 행복상상회로 풀가동 ㅋㅋ
평범하고 보잘것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 지난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에겐 큰 감동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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